[Column] 갈라타사라이 팬들의 분노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Galatasaray

<갈라타사라이가 2017-18 UEFA 유로파리그 예선 2차전에서 허무하게 탈락했다>

- '유럽의 정복자에서 동네축구팀으로 전락하다(Avrupa Fatihi, kasaba takımına elendi)' 터키의 스포츠 일간지 파나틱(Fanatik)의 말 그대로였다. 갈라타사라이가 스웨덴의 외스테르순드(Östersunds FK)를 상대로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유럽 대항전에서 일찌감치 짐을 쌌다. 1차전에서 0-2 패배를 당한 갈라타사라이는 이 경기에서 3골차 이상의 승리가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경기 시작부터 선제골을 넣기 위해 사력을 다 했다. 그러나 외스테르순드의 골문은 그리 쉽게 열리지 않았고, 오히려 후반 15분 아흐멧 찰륵(Ahmet Çalık)이 어이없는 실수를 범하며 외스테르순드에게 페널티킥을 내줬다. 외스테르순드의 키커로 나선 브르바 누리(Brwa Nouri)가 침착하게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면서 갈라타사라이는 더욱 더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후반 24분 아흐멧 찰륵이 직접 최전방까지 올라와서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고자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갈라타사라이는 상대의 결사방어 태세를 뚫지 못 하고 마치 호랑이에게 모가지를 물린 사슴처럼 서서히 패배를 받아들여야 했다. 갈라타사라이의 유로파리그 도전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기록으로 기억되는, 2005-06 시즌 UEFA컵 본선 1라운드에서 노르웨이의 트롬쇠(Tromsö)를 상대로 스코어 합계 2-1로 탈락한 것보다 더한 치욕이었다. '트롬쇠 참사(Tromsö Faciası)' 는 적어도 본선에서 일어났지, 이번처럼 예선에서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갈라타사라이는 23번의 슈팅 끝에 간신히 1골을 넣었고, 외스테르순드는 4번의 슈팅으로 1골을 넣었다>

- 이 날 경기장을 찾은 갈라타사라이 팬들은 무려 32,785명에 달했다. 아직 시즌도 시작하지 않았을 뿐더러 유럽 대항전이라고 해도 고작 예선 2차전일 뿐인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에 왔다. 시즌 중에도 웬만한 팀이 아닌 이상 15,000~20,000명(지난 시즌처럼 성적이 안 좋으면 10,000명 넘기기도 어렵다)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는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확실히 이번 경기에 대한 팬들의 관심이 높았다. 새로 영입한 선수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라서 그럴 수도 있고, 위기에 빠진 팀에게 응원으로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경기장을 찾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1988-89 유로피언컵(Europian Cup) 2라운드에서 스위스의 뇌샤텔 샤막스(Neuchatel Xamax)를 상대로 만들어낸 기적을 이번에도 만들길 바라는 팬들의 염원이 컸다. 유로피언컵은 UEFA 챔피언스리그로 개편되기 이전 유럽 최고의 클럽 대항전이었는데, 당시 갈라타사라이는 2라운드(16강전)에서 뇌샤텔 샤막스를 만나 1차전 원정에서 0-3 참패를 당하며 탈락을 눈앞에 둔 상황이었다. 그러나 갈라타사라이는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탄주 촐락(Tanju Çolak)의 해트트릭과 우우르 튀튀네케르(Uğur Tütüneker)의 2골에 힘입어 거짓말같이 5-0 대승을 거두고 8강 진출에 성공했다. 기적을 만들어낸 갈라타사라이는 고삐를 늦추지 않고 8강전에서 프랑스의 AS 모나코마저 꺾으며 4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그러한 좋은 기억들이 있었기 때문에 팬들이 이렇게 많이 경기장을 찾아왔던 것이다.


<유네스 벨한다(Younes Belhanda)의 개인기는 분명 눈요깃거리가 되기에 충분했지만, 실속은 없었다>

- 그러나 오늘 32,785명의 팬들이 목도(目睹)한 갈라타사라이는 기적은 커녕, 최악의 시즌 중 하나로 기억될 지난 시즌보다도 못 한 모습이었다. 더블 볼란치로 나선 셀축 이난(Selçuk İnan)과 톨가 지에르지(Tolga Ciğerci)는 차분한 공격 전개 작업보다는 마음이 급한 나머지 의미없는 롱패스를 남발했고, 야신 외즈테킨(Yasin Öztekin)과 시난 귀뮈쉬(Sinan Gümüş)는 찬스가 올 때마다 귀신이라도 씌인 사람들마냥 번번이 날려버렸으며, 이 때문에 최전방의 바페팀비 고미스(Bafetimbi Gomis)는 상대팀 한가운데 홀로 고립되어 외로운 싸움을 계속했다. 부상에서 갓 복귀한 유네스 벨한다(Younes Belhanda)는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을 뿐더러, 후반 종료 직전 기어코 성질을 부리며 옐로카드 한 장을 적립했다. 갈라타사라이에서 유일하게 자기 몫을 다 하는 선수는 골키퍼 페르난도 무슬레라(Fernando Muslera) 한 명뿐이었다.


<자신의 파쏘리그(Passolig) 카드를 불태우며 분노하는 갈라타사라이 팬의 모습>

- 후반전 들어서도 갈라타사라이의 무기력한 공격이 계속되자 팬들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 했고, 아흐멧 찰륵이 어이없는 실수로 상대팀에 페널티킥을 헌납하자 팬들은 참았던 분노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상대팀 키커 브르바 누리가 페널티킥을 차지도 않은 시점에서 갈라타사라이 팬들은 구단 경영진과 이고르 투도르(Igor Tudor) 감독의 사퇴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고, 실점한 이후에는 상대팀이 볼을 잡을 때마다 박수갈채를 보내고 갈라타사라이 선수들이 볼을 잡으면 야유를 하는, 일종의 자기파괴적 행동을 보였다. 관중석에서는 자신의 파쏘리그(Passolig) 카드를 라이터로 불태우는 갈라타사라이 팬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까지 했다. 파쏘리그 카드가 터키의 축구장에서 일종의 출입증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행동은 달리 말해서 두 번 다시 경기장에 오지 않겠다는 뜻과도 같았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갈라타사라이 팬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경기장 서편의 VIP석 입구로 수 백여명의 팬들이 모여 구단주 두르순 외즈벡(Dursun Özbek)과 이고르 투도르 감독의 사퇴를 촉구하고, 이 날 부진한 모습을 보인 셀축 이난과 야신 외즈테킨에 대해서도 "셀축을 사시면 야신을 공짜로 드립니다" 라는 구호를 외쳤다. 한마디로 이 팀에 저 두 선수는 필요없다는 이야기다.


<팀의 부진에 대한 갈라타사라이 팬들의 분노는 하루이틀동안 쌓인 것이 아니다>

- 과연 무엇이 갈라타사라이 팬들을 이토록 분노하게 만든 것일까? 단순히 한 경기 이기고 졌다고 해서 팬들이 저렇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일까? 아니다. 이들의 분노를 이해하려면 2015년 5월 23일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갈라타사라이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문제는 2015년 5월 23일, 그러니까 갈라타사라이의 제 36대 구단주 선거가 있었던 날부터 시작되었다.


<이스티클랄 거리(İstiklal Caddesi) 한복판에 서 있는 갈라타사라이 고등학교의 정문>

- 갈라타사라이의 구단주 선거는 회원으로 등록한 사람들이 투표권을 행사해 다수결로 구단주를 선출하는 방식이며, 이는 여느 구단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문제는 회원으로 등록하려면 반드시 갈라타사라이 고등학교(Galatasaray Lisesi)를 졸업해야 한다는 것으로, 말하자면 갈라타사라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관행에 대한 갈라타사라이 팬들의 반감은 예전부터 늘 존재하고 있지만, 여전히 투표권 확대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갈라타사라이 구단이 갈라타사라이 고등학교 출신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갈라타사라이 구단의 창립 역사를 알아야 한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갈라타사라이는 1905년 갈라타사라이 고등학교생 알리 사미 옌(Ali Sami Yen)이 같이 축구를 하던 학교 친구들을 모아서 만들어졌다. 이를 두고 급식충들 몇 명이 모여서 팀을 만들었다고 이해하면 매우 곤란한데, 지금이야 고등학교 졸업이 아무 것도 아닌 학력이겠지만 100년 전에만 하더라도 고등학교는 초일류 엘리트 계층의 자제들만 다닐 수 있는, 엘리트 양성기관이었다. 조선 말기의 배재학당이나 이화학당에 양반 자제들만 다닐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1481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바예지드 2세에 의해 설립된 갈라타사라이 고등학교는 오스만 제국 고위 관료들의 자제 또는 부잣집 자제들만 다닐 수 있는 초일류 엘리트 양성기관이었으며, 갈라타사라이 구단이 설립될 시기에는 프랑스의 교육자들을 초빙하여 프랑스어 강의를 하는, 일종의 근대 교육기관의 역할도 담당했다. 고졸 학력이 아무 것도 아닌 취급받는 현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엘리트의 상징으로 추앙받을 정도로 터키에서 갈라타사라이 고등학교의 위상은 높디 높다. 터키를 여행한 사람들도 알게 모르게 이 갈라타사라이 고등학교를 한 번쯤은 봤을 것이라 생각한다. 바로 여러분들이 이스티클랄 거리(İstiklal Caddesi)를 걸어갈 때 지나친 사진 속의 으리으리한 대문이 바로 갈라타사라이 고등학교의 정문이다.


<2015년 5월 23일 72.8%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36대 구단주로 당선된 두르순 외즈벡 現 구단주>

- 그렇기 때문에 갈라타사라이를 움직이는 것은 엘리트주의라는 말이 사실 빈 말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갈라타사라이의 엘리트주의에 대해 크게 나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뭐가 어찌됐든 그에 걸맞는 성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터키에서 갈라타사라이보다 더 많은 우승 트로피를 가진 팀이 없을 뿐만 아니라, 터키에서 유럽 대항전 우승을 경험한 팀은 갈라타사라이 하나뿐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처럼 쥐를 잘 잡고 있는 상황이라면 굳이 토를 달 이유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쥐를 못 잡는다면 얘기가 달라지겠는데, 바로 2015년 5월 23일 제 36대 구단주로 당선된 두르순 외즈벡 現 구단주가 그런 케이스다.


<갈라타사라이 팬들은 두르순 외즈벡 구단주의 '무능(無能)'과 '불통(不通)'에 분노하고 있다>

- 두르순 외즈벡 구단주 재임기동안 갈라타사라이는 2015-16 시즌 리그 6위, 2016-17 시즌 리그 4위에 그쳤다. 표면적인 성적뿐만 아니라 팀 내에서도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2015-16 시즌 여름 이적시장에서 빌랄 크사(Bilal Kısa), 젬 폴 카라잔(Jem Paul Karacan) 등등 팬들의 기대를 크게 밑도는 선수영입은 둘째 치더라도 케빈 그로스크로이츠(Kevin großkreutz)를 영입할 당시 보여준 행태는 개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적시장 종료를 앞두고 그로스크로이츠를 영입하는데 합의한 갈라타사라이 구단은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FIFA에 제출해야하는 이적서에 싸인을 하지 않고 그대로 보내버려서 FIFA에서 나중에 이를 문제삼아 케빈 그로스크로이츠의 이적을 불허해버린다. 결국 그로스크로이츠는 터키에서 허송세월하다가 계약해지로 팀을 떠나 독일로 돌아갔고, 팬들은 이 황당한 상황에 실소(失笑)를 금치 못 했다. 그나마 2015-16 시즌 당시 UEFA로부터 FFP 위반으로 인한 유럽대항전 출전금지(1시즌) 징계를 당한 것 때문에 이를 감안해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위의 그로스크로이츠의 사례 및 지난 2년간의 리그 성적만 놓고 보더라도 두르순 외즈벡 구단주의 무능함을 증명하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두르순 외즈벡 구단주 최대의 실수는 바로 함자 함자오을루(Hamza Hamzaoğlu) 감독을 떠나보낸 것이다>

- 더 심각한 것은 그가 무능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고집불통의 아이콘이라는 점이다. 2014-15 시즌 트레블을 달성한 함자 함자오을루(Hamza Hamzaoğlu) 감독을 마치 중소기업 인턴사원처럼 하루아침에 경질한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2015-16 시즌 여름 이적시장에서 이렇다 할 선수영입을 하지 못 한 상황에서 함자 함자오을루 감독은 있는 선수들을 가지고 팀을 꾸리기 위해 혼신을 다 했다. 라이벌 페네르바체가 로빈 반 페르시(Robin van Persie), 나니(Nani)를 영입했던 것과 비교하면 불평불만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는 묵묵히 팀을 지휘했고, 리그 10라운드까지 1위 베식타스를 승점 2점차로 뒤쫓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스쿼드를 가지고 2위를 달린다는 것 자체가 결코 쉽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갈라타사라이 수뇌부는 2015년 11월 18일 부진에 빠진 스트라이커 우무트 불루트(Umut Bulut)가 매스컴의 집중포화를 받는 것을 두고 그를 옹호하는 과정에서 함자 함자오을루 감독이 실언(失言)을 했다는 이유로 그를 경질시켰으며, 하루아침에 팀의 수장을 잃은 갈라타사라이는 날개없는 새처럼 추락했다. 당시 두르순 외즈벡 구단주가 문제삼은 함자 함자오을루 감독의 발언이란, "(구단 수뇌부가 아니더라도) 우무트 불루트의 재계약은 감독인 내가 했을 것이다" 인데, 이를 두고 두르순 외즈벡 구단주는 함자 함자오을루 감독이 자신들의 고유 권한을 침범한다고 생각해 매우 불쾌하게 여기며 그를 따로 불러 설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흔히 무능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자리에 대한 집착이 크다고 하는데, 자기 팀 선수를 매스컴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했던 감독의 발언을 그렇게 확대해석해서 하루 아침에 쫓아내버린 것이다.


<이고르 투도르 감독에 대한 두르순 외즈벡 구단주의 신임은 매우 크다>

- 함자 함자오을루 감독의 뒤를 이어 백전노장 무스타파 데니즐리(Mustafa Denizli) 감독이 부임했지만, 그조차도 3개월만에 스스로 물러나버릴 정도로 갈라타사라이는 당시 구제불능의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명망높은 감독이 필요하다는 세간의 주장을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이, 두르순 외즈벡 구단주는 프로팀 감독 경력이 전무한 얀 올데 리커링크(Jan Olde Riekerink)을 데려왔고, 지난 2월 그를 경질한 후에 이고르 투도르(Igor Tudor)를 불러들였다. 그가 왜 얀 올데 리커링크, 이고르 투도르와 같이 경력이 일천한 감독들만 선임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말들이 있지만, 결국 명망있는 감독들은 자기 주관이 뚜렷해서 필견 자신들과 갈등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고르 투도르 감독에 대한 두르순 외즈벡 구단주의 신임이 어느 정도냐면 지난 3월 이고르 투도르 감독의 특별훈련에 반발한 오렐리앙 셰주(Aurelien Chedjou), 나이젤 데 용(Nigel de Jong), 브루마(Bruma), 베슬리 스네이더(Wesley Sneijder)의 면전에 "(원한다면) 여기 있는 감독만 남겨놓고 너희들 전부 다 내쫓아버릴 수도 있다" 라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걷기도 전에 뛰려고 한다(Temeli düzeltmeden badana yapmak)>

- 어제 경기에서 갈라타사라이 팬들이 보여준 분노는 단순히 한 경기의 승패 때문이 아니다. 지난 2년간 두르순 외즈벡 구단주의 (스포츠 측면에서의) 무능함과 소통 불능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어제 경기에서 폭발한 것이다. 이에 대해 스포츠 평론가 메흐멧 데미르콜(Mehmet Demirkol)은 갈라타사라이의 현 상황에 대해 '갈라타사라이 수뇌부는 일을 잘 하고 있다. 스포츠 측면을 제외한다면' 이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또한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낙관주의적으로 보면 갈라타사라이는 아마도 지금 시즌을 준비할 수 있다. 물론 구단 수뇌부와 코칭스태프가 자리를 지킬 수 있다면 말이다.", "현실주의적으로 보면 갈라타사라이는 아마도 지금 시즌을 준비할 수 있다. 구단 수뇌부와 코칭스태프가 사퇴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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