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쉬페르 리그 승격 마지막 티켓의 주인공은 괴즈테페 Türk Futbol(Genel)

<승격의 기쁨을 주체하지 못 하고 경기장 한복판에 괴즈테페(Göztepe)의 깃발을 꼽은 괴즈테페 서포터>

- 터키 쉬페르 리그 승격의 마지막 주인공을 가리는 승격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서 터키 제 3의 도시 이즈미르(İzmir)를 연고로 하는 '이즈미르의 잠룡(潛龍)' 괴즈테페(Göztepe)가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에스키셰히르스포르(Eskişehirspor)를 물리치고 15년만에 쉬페르 리그로 돌아왔다. 관중들의 홍염 및 각종 이물질 투척으로 인해 수시로 경기가 지연되어 전반 추가시간 17분, 후반 추가시간 11분이 주어졌던 이 미증유의 경기에서 후반 8분 에스키셰히르스포르의 치케루바 오포에두(Chikeluba Ofoedu)에게 선제골을 허용한 괴즈테페는 에스키셰히르스포르 선수들의 고의적인 경기지연 행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후반 추가시간에 아디스 야호비치(Adis Jahovic)가 집념의 동점골을 터뜨려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다. 연장전에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 한 양 팀의 운명은 승부차기에서 갈렸다. 마치 평행이론을 보는 듯 양 팀의 1,2번 키커가 모두 득점에 성공하고 3,4번 키커가 모두 실축한 상황에서 에스키셰히르스포르의 5번 키커 세미 셴튀르크(Semih Şentürk)의 슛이 정중앙으로 향하는 바람에 괴즈테페의 귀나이 귀벤치(Günay Güvenç) 골키퍼가 손쉽게 막아냈고, 괴즈테페의 마지막 키커 시난 외즈칸(Sinan Özkan)이 침착하게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승부에 종지부를 찍었다.


<15년만의 승격의 기쁨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괴즈테페 선수들의 모습>

- 괴즈테페의 할릴 아크부나르(Halil Akbunar) 선수의 말 그대로 괴즈테페가 그토록 꿈꿔왔던 숙원이 실현되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괴즈테페뿐만 아닌, 이즈미르의 숙원이 실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최근 쉬페르 리그 역사를 곱씹어보면 확실히 터키 제 3의 도시이자, 인구 420만의 대도시 이즈미르는 유독 쉬페르 리그와 인연이 없었다. 교외지역까지 포함해서 이즈미르를 연고로 하는 팀은 괴즈테페(Göztepe), 카르시야카(Karşıyaka), 알타이(Altay), 알튼오르두(Altınordu), 부자스포르(Bucaspor)까지 무려 5팀이나 존재하지만, 이들이 가장 최근 쉬페르 리그에 올랐던 시즌은 6년 전(2010-11 시즌 부자스포르)이었다. 그 부자스포르마저도 이즈미르의 교외지역에 위치한 팀이기 때문에 넓은 범주로 봐서 포함시킨 것이지, 사실 이즈미르 연고팀들의 마지막 쉬페르 리그는 2002-03 시즌(괴즈테페와 알타이)이라고 봐야 하고, 카르시야카는 1995-96 시즌, 알튼오르두는 1969-70 시즌(!)을 끝으로 쉬페르 리그 구경조차 못 하고 있다. 이 5개팀들의 현재 상황 또한 암울하기 그지 없었는데, 이번 시즌 괴즈테페와 알튼오르두는 1.Lig(2부리그), 카르시야카와 부자스포르는 2.Lig(3부리그), 그리고 알타이는 3.Lig(4부리그)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나마 알타이의 경우, 다음 시즌 2.Lig로 승격하게 되었지만, 어쨌든 이즈미르 연고팀들에게 쉬페르 리그는 그동안 남의 이야기였을 뿐이다. 할릴 아크부나르 선수가 괜히 쉬페르 리그 승격을 '숙원' 이라고 말했을까?


<괴즈테페의 마지막 키커 시난 외즈칸의 슛이 골망을 가르자 환호하는 괴즈테페 서포터들의 모습>

- 괴즈테페의 전성기는 1960년대 후반이었다. 1968-69 시즌과 1969-70 시즌 튀르키예 쿠파스(Türkiye Kupası) 우승을 차지했고, UEFA컵 위너스 컵에서 8강까지 진출해 AS로마를 조우하기도 했다. 이후 끊임없이 쉬페르 리그와 1.Lig(2부리그)를 오르내리던 괴즈테페는 2002-03 시즌 쉬페르 리그에서 강등된 이후 15년동안 구단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를 맞이한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라는 말처럼 추락에 추락을 거듭해 프로 리그의 마지노선인 3.Lig에서도 축출되면서 07-08 시즌에는 아예 아마추어 리그(!)까지 떨어졌다. 이후 한 단계 한 단계씩 승격을 시작한 괴즈테페는 2015-16 시즌에서야 1.Lig에 돌아왔고, 드디어 이번 시즌 5위에 오르며 승격 플레이오프에 합류해 준결승에서 볼루스포르(Boluspor)를 꺾고 결승전에 올랐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전력 면에서 상대적 우위라고 평가받던 에스키셰히르스포르를  끝내 무너뜨렸다. 승격이 확정되자 선수, 감독, 팬 모두가 눈물바다를 만든 이유는 바로 괴즈테페의 그 15년간의 수난사 때문이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일마즈 부랄(Yılmaz Vural) 감독은 끝내 자신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 이번 시즌 TFF 1.Lig 전반기까지 리그 선두를 질주했던 괴즈테페의 수장은 갈라타사라이의 레전드이자, 인테르 밀란(Inter Milan)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오칸 부룩(Okan Buruk) 감독이었다. 오칸 부룩은 평소 언행이 점잖기로 유명한 감독인데, 후반기 들어서 일부 괴즈테페 선수들의 정신력 해이 현상이 눈에 띄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괴즈테페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괴즈테페의 순위는 계속 떨어졌고, 결국 괴즈테페 이사회는 3월 20일 용단을 내렸다. 팀을 제대로 휘어잡지 못 하는 오칸 부룩 감독을 경질시키고, 그 자리에 괴장(怪將) 일마즈 부랄(Yılmaz Vural) 감독을 앉힌 것이다.

- 이 결정에 사실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했는데, 그 이유는 일마즈 부랄 감독의 성향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는 단순히 이 사람이 귀라이 부랄(Güray Vural)과 함께 이름(...) 때문에 유명하지만, 일마즈 부랄 감독은 터키에서 성질 더럽기로 아주 유명한 감독이다. 선수들의 귀싸대기를 올려붙이는 건 기본이고, 인터뷰 할 때마다 명언(?)으로 남겨도 될 정도로 돌직구를 남발한다. 오칸 부룩 前 감독과는 180도 아주 다른 사람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마즈 부랄 감독은 괴즈테페 이전에도 터키에서 무려 26개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쫓겨나기를 반복하는 '떠돌이 감독'의 대표로써, 평균 재임 기간이 6개월을 간신히 넘긴다(물론 일마즈 부랄 감독이 보통 문제가 생긴 팀의 구원투수로 중도부임한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 그런 선무당같은 감독이 갈림길에 선 괴즈테페의 수장이 되었으니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의 우려대로 괴즈테페는 리그 잔여 9경기를 4승 1무 4패로 마치면서 간신히 승격 플레이오프에 턱걸이(리그 5위)했고, 괴즈테페의 승격 가능성을 점치는 전문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설령 괴즈테페가 볼루스포르를 꺾는다 하더라도 에스키셰히르스포르를 넘어설 것이라고는 나조차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에는 일마즈 부랄 감독이 옳았다. 무소의 뿔같이 혼자서 앞으로만 갈 줄 알았던 그의 뚝심이 결국 괴즈테페의 오랜 숙원을 이뤄낸 것이다. 사람들을 더 놀라게 한 것은 승격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차분하고, 신사적으로 답변하는 일마즈 부랄 감독의 태도였다. 그는 지난 시즌 아다나 데미르스포르(Adana Demirspor)를 이끌고 승격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서 지역 라이벌 아다나스포르(Adanaspor)를 상대로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여 승격에 실패했던 뼈아픈 과거를 회상하며 패자 에스키셰히르스포르를 위로했다. 내가 알던 그 일마즈 부랄 감독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품격있는 인터뷰였다.


"이즈미르의 모두가 원하고, 갈망했던 결과입니다.
그 이유는 여기(안탈리아)까지 와 주신 팬 여러분들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밤이네요. 정말 기쁘고, 또 기쁘지만,
나는 에스키셰히르스포르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작년에 내가 겪었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괴즈테페에게 오늘은 행복의 끝이 아닌, 시작일 뿐이다>

- 괴즈테페의 쉬페르 리그 복귀는 최근 흥행부진으로 골머리를 않고 있는 쉬페르 리그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긍정적 요소로 평가받고 있다. 소위 '빅마켓'이라고 불리는 대도시 연고팀들이 상위 리그에서 뛰어야 리그 흥행의 보증수표가 된다는 점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시즌 강등 위기에 직면한 부르사스포르(Bursaspor)의 잔류를 기원하고, 괴즈테페의 쉬페르 리그 승격을 바라는 터키 축구팬들이 그토록 많았던 것이다. K리그가 진심으로 리그 흥행을 걱정하는 처지에 놓여있다면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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