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7 제바트 프레카치 팬 사인회 (Cimbom1905, TV에 출연하다!) Galatasaray

<제바트 프레카치(Dževad Prekazi)는 1985년부터 약 6년간 갈라타사라이에서 활약했다>

- 터키 쉬페르 리그 최다 우승(20회) 기록을 자랑하는 갈라타사라이에게도 소위 말하는 시련의 계절, '암흑기'가 있었다. 1970-71 시즌부터 1972-73 시즌까지 쉬페르 리그 역사상 최초의 리그 3연패를 달성하며 승승장구하던 갈라타사라이는 1973-74 시즌부터 1985-86 시즌까지 무려 13년동안 단 한 번도 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 했다. 악몽과도 같았던 암흑기는 유프 데어발(Jupp Derwall) 감독(참고)의 크나큰 공헌으로 1986-87 시즌이 되어서야 비로소 종식되었고, 당시 갈라타사라이의 레프트 윙 포지션에서 뛰던 선수가 바로 제바트 프레카치(Dževad Prekazi)였다.



<제바트 프레카치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왼발의 지배자(염기훈?)'였다>

- 선수 시절 제바트 프레카치는 '미친 왼발' 의 소유자로 유명했다. 미사일과 같은 슈팅은 물론, 골대 구석구석을 찌르는 핀포인트 슈팅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갈라타사라이의 암흑기 막바지(1985-86 시즌)에 영입된 프레카치는 첫 시즌 9골을 기록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고, 1986-87 시즌과 1987-88 시즌에는 도합 19골을 기록하며 갈라타사라이의 13년 암흑기를 종식시킴과 동시에 리그 2연패의 수훈갑이 되었다. 특히 1989년 3월 15일 AS 모나코를 상대로 37m 거리에서 찬 대포알 슈팅(위 동영상에서 1위를 기록한 골 장면)은 지금도 간간히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을 정도로 매우 유명하다.


<튀르크 텔레콤 스타디움(Türk Telekom Stadyumu) 內 박물관에 준비된 팬 사인회 장소>


<바페팀비 고미스(Bafetimbi Gomis)의 팬 사인회(참고)에 비해 장년층의 비중이 훨씬 더 높았다>


<팬들의 머플러와 유니폼에 일일히 사인을 하고 있는 제바트 프레카치>

- 생각보다 인파가 그리 많지 않아서 이전의 바페팀비 고미스의 팬 사인회와는 달리 분위기가 그리 빡빡하진 않았다. 안전요원들도 프레카치와 함께 셀카를 찍으려는 팬들의 움직임을 크게 제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15분 정도 기다려서 내 차례가 왔는데, 유니폼을 건네며 "프레카치 씨,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라고 인사를 하자,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보는 프레카치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무려 3초동안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데 누가 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다가 "어디서 왔습니까?" 라고 묻길래 "한국에서 왔습니다" 라고 대답하니 갑자기 모든 카메라들의 포커스가 나를 향해 집중되었다(...) 
 

<그렇게 갈라타사라이 TV(GS TV)를 통해 생중계로 방영된 프레카치의 팬 사인회에 찍혀버리고 말았다>


<원하던 사인을 받고 나서 공손히 인사하고 조용히 물러나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갈라타사라이 TV와 단독 인터뷰까지 해버리고 말았다(...)>

- 결국 제바트 프레카치의 사인이나 한 번 받아볼까 하고 찾아갔다가 얼떨결에 공중파 TV 채널에 출연해 인터뷰까지 해 버렸다(...) 대낮부터 이걸 생중계로 보고 있던 내 친구 한 명이 녹화까지 해 놓고 Whatsapp 단톡방에 올렸는데 그걸 보는 순간 어찌나 부끄럽던지 순간 얼굴이 다 빨개졌다. 초등학교 6학년 때 EBS에 출연 한 번 해 본 적은 있어도 이렇게 외국 채널에서 외국어로 인터뷰를 하게 될 줄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덕분에 친구들 사이에서 지금도 계속 놀림감이 되고 있다(...)


<갈라타사라이의 '왼발의 지배자' 제바트 프레카치의 친필 사인>


<바페팀비 고미스의 사인(左)과 제바트 프레카치의 사인(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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