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갈라타사라이를 사로잡은 '라스트 사무라이' 나가토모 유토 Galatasaray

<터키의 유명 코미디언 젬 일마즈(Cem Yılmaz)의 대표작 'G.O.R.A' 의 한 장면>

- 터키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다보면 터키인들로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 표현이 있다. "너를 선택했어. 왜냐면 넌 좀 다르니까, 일본인이니까, 그리고 똑똑하니까(Seni seçtim çünkü sen farklısın Japonsun bir kere akıllı adamsın)" 라는 말인데, 이 말은 터키의 유명 코미디언 젬 일마즈(Cem Yılmaz)의 대표작 'G.O.R.A' 에서 탈출을 모의하던 주인공이 일본인 옆으로 다가가서 내뱉은 명대사 중 하나다. 터키인들이 살면서 동양인들을 접하는 게 고작 케이블 TV에서 성룡(成龍)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80년대 고전 영화들이 전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지나가다가 동양인(주로 관광객)을 만나기만 하면 일단 이 표현부터 써 보려고 안달을 한다(...) 그 사람이 중국인이든 한국인이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전부 다 똑같이 생겨먹었는데 뭐 어쩌라고(Hepsi birbirine benziyor ne fark eder?)" 라는 말로 자신들의 무지(無知)를 정당화하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생각할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라는 식으로 넘기는 게 더 편하다(물론 이는 한국에서 생활하는 터키인들의 고충과 놀랍도록 흡사한데, 그들을 아랍인이라고 생각하거나, 또는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온갖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국인들이 아직도 꽤 많다).


<2018년 1월 31일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나가토모 유토(長友佑都)>

- 2017-18 시즌 겨울 이적시장의 마지막 날인 2018년 1월 31일, 나가토모 유토(長友佑都)의 갈라타사라이 임대 이적 소식이 속보로 타전됨과 동시에 그가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갈라타사라이는 왼쪽 풀백 포지션의 치명적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유벤투스의 콰드오 아사모아(Kwadwo Asamoah)와 꾸준히 접촉했으나, 아사모아는 갈라타사라이의 러브콜에 그닥 관심이 없었고, 이에 '꿩 대신 닭' 으로 인테르에서 입지가 축소된 나가토모 유토의 임대 이적을 추진한 것이다. 하지만 나가토모는 아내가 출산을 앞두고 있던 시점인지라 아내를 이탈리아에 남긴 채 터키로 가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는데, "저는 신경쓰지 마시고, 당신의 축구 커리어만을 생각해서 결정해주세요." 라는 아내의 조언에 용기를 얻어 새로운 도전을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결정이 그의 축구 커리어뿐만 아니라 갈라타사라이에게 있어서도 크나 큰 터닝포인트가 된다.


<누차 말하지만, 이건 팬들이 합성해서 만든 짤방이 아닌, 갈라타사라이 구단에서 만든 짤방이다(...)>

- 비록 '꿩 대신 닭' 으로 나가토모를 영입했지만, 나가토모에 대한 갈라타사라이 구단의 기대감은 매우 컸다. 당시 갈라타사라이는 메디폴 바샥셰히르(Medipol Başakşehir), 페네르바체, 베식타스와 함께 치열한 리그 우승 경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다른 포지션들에 비해 유독 왼쪽 풀백 포지션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갈라타사라이의 왼쪽 풀백 주전이었던 이아스민 라토블레비치(Iasmin Latovlevici)는 매 경기마다 수준 이하의 경기력을 선보였고, 급기야 갈라타사라이 팬들로부터 홈에서 야유(!)를 받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파티흐 테림(Fatih Terim) 감독은 나가토모가 영입되자마자 곧바로 라토블레비치를 벤치에 앉히고 나가토모를 주전으로 출장시키며 그에게 신뢰를 보였고, 그렇게 나가토모는 이나모토 준이치(稲本潤一)의 발자취를 따라 갈라타사라이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이어나가게 된다.


<터키인들은 일본인들이 말 끝마다 '코(こ)' 라고 말한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편견이 있다>


<갈라타사라이 팬들이 처음에 나가토모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드러내는 그들의 현수막>

- 하지만 나가토모 유토에 대한 갈라타사라이 팬들의 기대치는 그리 높지 않았다. 일단 그들 스스로 축구에 있어서는 동양인들에 비해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가토모를 무슨 마케팅용으로 인테르에서 운 좋게 7년동안 놀고 먹다가 이리로 굴러들어온 빙다리 핫바지로 보는 사람들이 절반이었고, 그냥 그가 동양인이기 때문에 웃음거리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 나머지였다. 물론 그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게, 터키 쉬페르 리그에서 활약했던 총 6명(한국인 선수 3명, 일본인 선수 3명)의 선수들 중에 터키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을용(트라브존스포르), 신영록(부르사스포르), 이나모토 준이치(갈라타사라이), 호소가이 하지메(부르사스포르) 정도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가뭄에 콩 나듯 있을까 말까할 정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터키인들 입장에서는 나가토모가 제 아무리 인테르에서 7년동안 뛰다가 왔다고 해도 우습게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30대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활동량을 보이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나가토모 유토>

- 터키인들의 이러한 선입견은 1달이 다 지나가기도 전에 잘못되었음이 증명되었다. 그 누구보다 더 빠르게, 남들보다 다르게 나가토모는 경기마다 팀 내 최고의 활동량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갈라타사라이의 고질적인 약점이었던 왼쪽 측면 수비를 훌륭하게 해내며 상대팀 공격을 원천봉쇄했다. 갈라타사라이 팬들은 나가토모 이전의 왼쪽 풀백 주전이었던 이아스민 라토블레비치의 '삽질' 만 보다가 혜성처럼 나타난 '사람다운 왼쪽 풀백' 을 바라보며 조금씩 나가토모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갈라타사라이 팬들의 기대에 나가토모는 매 경기마다 전력으로 부응했다.


<사이드라인으로 흘러나가는 볼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쫓아가서 살려내는 나가토모 유토>

※ 모바일로 보시는 분들은 짤방을 직접 터치해주셔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가토모의 노력은 바페팀비 고미스(Bafetimbi Gomis)의 득점으로 결실을 맺었다>
  

<2018년 3월 3일, 정확한 크로스로 바페팀비 고미스의 골을 도우며 첫 어시스트를 기록하다!>


<2018년 3월 12일, 1-1로 팽팽히 맞서던 후반 41분에 결승골을 도우며 팀 승리에 기여했다>


<극적인 상황에서 시즌 2번째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을 구해낸 나가토모 유토>


<시난 귀뮈쉬(Sinan Gümüş)가 워낙 잘 차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가토모의 공을 폄하할 수도 없다>

- 1달만에 실력으로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잠재운 나가토모는 실력뿐만 아니라 특유의 넉살 좋은 성격으로 빠르게 팀에 융화되었다. 팀 동료 게리 로드리게스(Garry Rodrigues)는 "좋은 선수이고, 좋은 사람이다. 이토록 빠르게 우리와 우리 팀에 적응할 줄은 생각치 못 했다. 오버래핑을 많이 해 줘서 내게 큰 도움이 된다. 좋은 성격을 가진 베테랑 선수다." 라고 평가하기도 했고, 클라우지우 타파레우(ClaudioTaffarel) 골키퍼 코치와 시난 귀뮈쉬(Sinan Gümüş), 페르난두 헤제스(Fernando Reges)도 나가토모와 스스럼없이 지내며 친분을 과시했다. 누가 보면 한 10년동안 갈라타사라이에서 뛴 선수라고 생각될 정도로 나가토모의 융화력은 이 곳에서도 빛을 발했다.



<Happy Birthday~♪ My Bro~♬>


<나가토모 유토의 '생일 테러' 에 그저 웃고 마는 유네스 벨한다(Younes Belhanda)>


<클라우지우 타파레우(Claudio Taffarel) 코치는 훈련 때마다 매일 나가토모를 태우고 출퇴근했다>


<득점 직후, 곧바로 나가토모에게 달려가서 '합장 세리머니' 를 하는 시난 귀뮈쉬>


<나가토모의 유머센스에 빵 터지는 페르난두 헤제스(Fernando Reges) 라토블레비치 넌 웃지마>


<페네르바체의 나빌 디라르(Nabil Dirar)를 원천봉쇄하며 이스탄불 더비에서 존재감을 과시한 나가토모>


<페네르바체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나가토모의 기습적인 중거리 슛>


<이게 만약 들어갔더라면 나가토모는 평생 갈라타사라이의 영웅으로 추앙받고도 남았을 것이다>

- 나가토모 유토의 활약은 3월 17일 페네르바체와의 이스탄불 더비에서도 이어졌다. 페네르바체의 라이트 윙 나빌 디라르(Nabil Dirar)와 라이트 풀백 셰네르 외즈바이락르(Şener Özbayraklı)는 나가토모의 '찰거머리' 수비에 아예 지워지다시피 했고, 후반전에는 나가토모가 직접 아크 서클 앞에서 중거리슛으로 득점을 노렸으나 골키퍼 볼칸 데미렐(Volkan Demirel)의 선방에 막혔다. 0-0 무승부로 승부를 가리지 못 했던 이 경기에서 나가토모의 슛이 골로 연결되었더라면 1999년 12월 22일 이후 무려 19년동안 페네르바체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 하던 갈라타사라이의 '저주' 가 나가토모에 의해 깨졌을 것이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지금까지도 갈라타사라이 팬들 사이에서 회자될 정도로 인상깊은 장면 중 하나였다.


<베식타스 수비진의 빈 틈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오버래핑해서 침투하는 나가토모>


<곧바로 땅볼 크로스로 페르난두 헤제스에게 연결시켰고, 페르난두는 침착하게 선제골을 터뜨렸다>


<리그 우승을 건 베식타스와의 결전에서 나가토모는 시즌 3번째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 페네르바체와의 이스탄불 더비 이후에도 나가토모는 화려하진 않지만, 꾸준한 경기력으로 매 경기 팀 승리에 일조했다. 그리고 4월 29일 베식타스와의 더비에서 또 한 번 '사고' 를 쳤다. 특유의 오버래핑으로 베식타스 수비진의 허점을 노려 침투한 다음, 한 박자 빠른 땅볼 크로스로 페르난두 헤제스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하며 팀의 2-0 승리를 이끈 것이다. 매 경기마다 좋은 경기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큰 경기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오히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나가토모를 아직도 웃음거리로 생각하는 터키인들은 이 경기 이후로 아무도 없게 되었다. 들어올 때는 'X발 곤니찌와 녀석(AMK goniçiva herifi)' 이었지만, 그가 터키 쉬페르 리그 최고의 레프트 풀백으로 우뚝 서는 데는 3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리그 우승이 걸려있던 괴즈테페(Göztepe)와의 최종전에서도 나가토모는 페널티킥 유도에 일조했다>


<그리고 이 페널티킥 결승골로 갈라타사라이는 통산 21번째 우승을 달성하게 된다>

- 2017-18 시즌 갈라타사라이는 여름 이적시장에서의 대대적인 선수 영입으로 전 포지션에서 타 팀들에 비해 상대적인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레프트 풀백 포지션은 시즌 초반부터 줄곧 약점으로 지목되었는데,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당시 주전이었던 이아스민 라토블레비치의 경기력이 기대 이하였기 때문에 상대팀은 줄곧 갈라타사라이의 왼쪽 측면을 노렸다. 그 때문에 갈라타사라이는 홈에서는 홈 어드밴티지를 이용해 무패행진을 달리다가도 원정만 나가면 연거푸 패배하고 승점을 깎아먹기 일쑤였다. 그런데 겨울 이적시장에서 나가토모 유토가 영입되면서 갈라타사라이의 마지막 고민이 깨끗하게 해결되었고, 결국 3년만에 리그 챔피언 타이틀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즉, 나가토모는 갈라타사라이에게 있어서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퍼즐 한 조각' 과 같은 존재였다.


<Before&After 나가토모 유토 in Galatasaray>




<리그 우승 축하연에서도 나가토모는 '임대생', '이방인' 이 아닌 또 하나의 '주인공' 이었다>

- 갈라타사라이 입장에서는 이렇게 좋은 활약을 보여준 나가토모를 당연히 영입하고 싶어했다. 문제는 인테르가 그를 놔줄 것인가, 안 놔줄 것인가였는데, 예상대로 인테르는 나가토모를 그리 헐값에 내놓을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6월 한 달 내내 나가토모를 둘러싼 갈라타사라이와 인테르의 협상이 지속되었고, 갈라타사라이 팬들은 시시각각 들어오는 나가토모 관련 소식에 눈과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6월 29일, 이적료 250만 유로 및 연봉 200만 유로에 2년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갈라타사라이 팬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훈련이 없는 휴일에도 나가토모는 집에서 틈틈이 개인 훈련을 하며 자기 자신을 단련한다>

- 경기 내적인 측면이나 성격 외에도 갈라타사라이 팬들이 나가토모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철저한 자기관리 때문이다. 나가토모는 틈틈이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집에서 개인 훈련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하는데, 이를 두고 많은 터키인들이 나가토모의 성실함에 대해 '터키 선수들은 맨날 물담배나 피우러 다니고, 클럽에 놀러다니는데 나가토모는 집에서조차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라는 식으로 칭송하곤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터키 쉬페르 리그의 외국인 선수 보유한도 제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하는 대표적인 예로 인용되는 선수 중 하나가 바로 나가토모다(그 반대로 터키 선수들의 태만함을 논할 때 흔히 언급되는 선수는 페네르바체의 오잔 투판이다).


<갈라타사라이 구단을 방문한 미야지마 아키오(宮島昭夫) 주터 일본 대사>

- 믿기지 않겠지만 나가토모의 활약은 터-일 관계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가토모의 이적 직후, 일본의 매스컴은 나가토모의 갈라타사라이 이적을 비중있게 보도하며 현지 취재를 위해 수 십명 단위로 갈라타사라이 구단을 방문해 터키에서 화제가 되었는데, 여기에 미야지마 아키오(宮島昭夫) 주터 일본 대사도 갈라타사라이 구단의 초청을 받아들여 방문하기도 했다. 미야지마 대사는 무스타파 젠기즈(Mustafa Cengiz) 갈라타사라이 구단주와의 자리에서 "나가토모는 터-일 관계에 있어서 친선 대사와 같은 존재다. 그로 인해 터키인들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라며 나가토모에 대한 터키인들의 따뜻한 시선에 감사를 표했다.


<갈라타사라이 구단에서 발행하는 잡지(2018년 3월호)의 표지 인물로 선정된 나가토모 유토>

- 굳이 '동양인' 으로 한정하지 않더라도, 터키 쉬페르 리그 역사상 나가토모 유토만큼 이렇게 빠른 시간에 많은 사랑을 받은 역대 외국인 용병을 찾아보기란 그리 쉽지 않다. 또한 그는 베슬리 스네이더(Wesley Sneijder), 로빈 반 페르시(Robin van Persie)와 같은 선수들처럼 시작부터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터키에서의 커리어를 시작한 선수가 결코 아니었다. 그는 시작부터 '동양인' 에 대한 터키인들의 오래된 편견과 마주했고, 단 3달만에 이들을 자신의 열렬한 지지자, 서포터로 변신시키는데 성공했다. 2,000만 갈라타사라이 팬들이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단 한 명의 일본인, 나가토모 유토는 갈라타사라이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 중 한 명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2017-18 나가토모 유토 스페셜 in Galatasa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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